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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 정치적 상황이 복잡한 이유

by 향긋한커피 2021.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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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악연은 많은 분들이 911테러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큰 기폭제인 것이 911테러였지만 이전에도 아프가니스탄에는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이해하기

아프가니스탄은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온 곳이였습니다. 위치상 이런 것들이 매우 도드라졌죠. 실크로드가 지나가던 길목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해주는 매우 중요한 거점이였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다양한 문화를 누리던 곳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이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비극의 시작은 영국의 식민지

이런 곳이 19세기 영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이때 영국이 자국의 편의대로 국경선을 그어버리죠. 그러다 보니 같은 부족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편의대로 그어 버린 국경선에 의해서 아프간 국민, 파키스탄 국민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생전 처음본 부족원의 사람들이 같은 아프간 국민 또는 파키스탄 국민이 되어 버린것이죠. 이러니 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각 부족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뭉쳐있는지에 대한 부족 중심 문화 특성에 대해 몰이해가 비극의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이다라는 별명이 붙게 됩니다. 험준한 지형은 물론 다양한 부족과 종료로 얽혀 어느 제국도 정복하지 못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소련에 점령 당한 아프가니스탄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아프가시스탄이지만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또 망하게 됩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소련이 가만히 둘 일이 없었죠. 소련입장에서 아프가니스탄을 먹으면 부동항이 생길 것 같은 것이죠.  얼지 않는 두부로 가는 길이 열린다면 당연히 소련입장에서는 먹어야 겠죠?

 

그래서 1980년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해서 10년간 점령지로 있었고 이때 아프가니스탄 내에 있던 군벌들이 저항을 하기 시작했고 당시 냉전시대였던 미국입장에서는 군벌들이 저항을 응원했고 돈과 무기를 적극 지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군벌들의 세력이 커지게 되는데 그 수혜의 중심에 바로 탈레반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만큼 조직화된 조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군벌 세력들은 산골짜기  동네 규모였던 반면 탈레반은 이슬람 신학교라 할 수 있는 마드라사와 연계되어 거대 조직화을 이룹니다. 이렇다보니 군벌들 중에서 규모로 압승이었던 것이죠.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부동항에 대한 꿈을 꾸었던 소련군이 철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아프가니스탄은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이때를 '암흑의 시기'로 평가하는데요. 소련이 떠란 뒤 군벌들의 내전이 본격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아프간 국민들은 총든 사람들 중 아무나 이겨서 제발 이 지옥 좀 끝내주었으면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끝나기만을 바라는 심정이었던 것이죠. 긴 내전 끝에 1996년 정권을 탈취한 것이 바로 탈레반입니다. 1996년 9월 27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입성하게 되는 것이죠.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가혹한 억압 정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해 집니다. 탈레반 집권 당시 분위기를 보자면 (1996~2001년) 나라 전체가 마드라사와 같았다라고 합니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은 처음 국가를 통치해 보는 것이였을 겁니다. 탈레반이 말이죠.

 

여자들에게는 남자 없이는 거리를 돌아다닐 수가 없었고 집에만 있어야 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는 도포를 뒤집어 써야 했던 것입니다. 8살 이후부터는 여자는 교육을 받으면 안되는 것이었고요. 왜냐하면 마드라사에는 여자가 없었거든요. 그밖에 이슬람 율법상 어긋나는 것은 다 금지가 됩니다.

 

이렇게 될수밖에 없었던 이유로는 탈레반이 보고 배운 건 마드라사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 세계가 마드라사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생활 방식을 마드라사식으로 강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아닌것은 즉, 탈마드라사는 세속화되었다고 판단하여 신이 보기에는 범죄다 하여 처참하게 처형을 하게 됩니다.

 

 

미국과 탈레반이 등을 돌리게 된 계기

탈레반은 미국이 지원해준 돈과 무기로 세력을 키웠습니다. 그러니 미국과는 관계가 좋았겠죠. 이런 탈레반과 미국이 소원해지게 됩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간 후 미국입장에서는 탈레반에게 돈을 주고 무기를 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탈레반이 재정난을 겪게 됩니다. 탈레반은 경제활동을 통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경제 개념이 없었던 것이죠. 오로지 마드라사밖에 몰랐던 그들은 기부금을 받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이들에게 가장 큰 지원국가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돈만 왔느냐 아닙니다. 이때 같이 따라오게 된 것이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었던 것이죠. 

 

탈레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습니다. 알카에다가 누군지 모르겠고 알 필요도 없었고 오로지 사우디 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911테러는 알카에다 소행

다들 아시겠지만 2011년 911테러가 발생했는데 이것이 알카에다의 소행이었습니다.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물들인 전대미문의 테러였습니다. 

 

그때서야 미국은 탈레반과 알카에다와의 유착관계를 알게 되었고 위협감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래서 미국은 탈레반에에 오사마 빈 라덴을 내놓아라 요구를 했지만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거절을 한 것인지 정말 몰라서 요구를 들어들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빌미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본격적으로 침공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서막이 되는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 탄생

미국이 맹공을 펼치는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탈레반은 바로 무너지게 됩니다. 도망을 가게 되는 것이죠. 탈레반이 축출된 뒤 미국 주도로 군벌들 중심의 지도부가 생성됩니다. 과거 탈레반과 대립을 이뤘던 북부동맹을 대거 채용을 하면서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후에도 전쟁이 멈추지 않습니다. 외부의 힘으로 급조된 정부가 제 기능을 할 리 만무한 것이죠. 미국입장에서 선정한 지도자에게 강력한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불가했다고 봅니다. 앞서 서두에 설명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부족국가였다는 것. 영국이 부족국가에 대해 이해가 부족해서 내란이 생겼듯이 미국 역시 이를 이해하지를 못했다고 봅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미군이 알려주는 군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셨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지키려는 의지가 없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비판을 했지만 사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이 훈련을 왜 바받아야 하는지를 이해하지를 못했던 겁니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주입하려고 하니 돈은 돈대로 들어가는데 성과는 안 나오는 상황이 20년간 이어졌던 것이죠.

 

 

미국 아프가니스탄 철수 결정

2021년 5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철수를 결정하게 됩니다.

탈레반이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해 주요 도시를 모두 점령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시 정권 재탈환을 하게 됩니다. 8월15일에는 수도 카불을 점령하면서 완전히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게 되었죠.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해외로 도피했고 도주 당시 2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오랜 내전과 빈곤으로 아프간 국민들은 고통을 받았을텐데 호화와 사치를 누린 아프간 지도부의 민낯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상에 있어서 미국 등 밀접한 서방국들도 미처 몰랐다고 하죠.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많은 난민들이 발생했고 이 난민은 국제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나라 정부의 일을 도와준 아프가니스탄 난민 일부를 받는다는 결정에 있어 많은 찬반논쟁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종교적 차이에 대해 이해 부족으로 마찰이 일어날 수 있음을 걱정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우리도 한때는 난민인 적이 있었습니다. 북한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세계의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난민문제에 대해서 무조건 반대하기 보다는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조금은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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