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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은 누구?

by 향긋한커피 2020.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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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은 누구?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가장 오랫동안 서울시장을 하셨고 대선주자로도 거론되었기 때문에 정말 안타까운데요. 과연 박원순은 누구였기에 이러한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 알아봅시다.

 

인권변호사였던 박원순

그는 인권변호사로 정말 유명했었습니다. 학생운동으로 서울대에서 제명도 됐던 그였지만 제22회 사법시험을 합격했고 12기 수료와 함께 검사로 임용되었지만 1년만에 박차고 나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게 됩니다. 정말 유명한 사건으로 부천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말지보도지침 사건의 변론을 담당했으며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변호인 중 하나로 활동하기도 했을만큼 인권변호사로는 정말 유명했던 박원순이었습니다.

 

인권변호사에서 한발 더 성장한 시민운동가

그는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참여연대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이 단체의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시민운동의 성장을 가져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1995년에는 사법개혁운동, 1998년에는 소액주주운동, 2000년에는 낙천운동, 낙선운동 등 굵직 굵직한 시민운동에는 박원순이란 이름이 꼭 있었습니다.

 

정치의 시작은 서울시장으로

무상급식에 반대한다며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물러남으로써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강단을 보였습니다. 그 당시 후보로 나경원이 있었지만 이미 많은 서울사람들은 박원순의 시민운동가로서 활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경원을 가뿐히 이기고 서울시장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남은 임기동안 세세한 부분까지 사안을 꼼꼼하게 챙기며 시민사회단체 출신 인물들을 대거 서울시로 데려와 시정 곳곳에 배치하면서 서울시정의 틀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재선에 성공한 서울시장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와 같이 2014년 6월4일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게 됩니다.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곤 했지만 이때부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르게 되는데요. 메르스 사태 당시 투명한 정보공개와 결단력을 보이면서 많은 서울시민들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이런 결단력을 보였기 때문에 2018년 6월에 있던 그당시 김문수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제치고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하게 됩니다. 3선까지 서울시장이 있었나요? 박원순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3선까지 했지만 이명박시장시설에 청계천사업, 오세훈시장의 광화문광장 같은 업적이 없다는 지적을 받곤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박원순은 그게 정치적으로 맞는지 몰라도 자신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내 삶은 바꾸는 것이 정치라고 말하던 그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로 힘들지만 후에 대대적인 친환경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고 그것은 서울판 그린뉴딜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그림은 완성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소문으로 들었을 겁니다. 박원순시장이 성추행을 했다더라 같은 카더라 소문을 분명 들었을테지만 그동안 그가 보여줬던 모습은 그런 것과 전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냥 헛소문으로만 여겼을겁니다. 이번에 가족이 실종신고를 하면서 뉴스를 통해 종로경찰서로 성추행 혐의로 접수가 되었음을 확인한 순간 꽤 충격적이었고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에는 더더욱 충격적입니다. 신고를 하신 그 분도 이러한 결과를 바라지는 않았을거라 생각됩니다. 진심 어린사과와 이에 맞는 보상을 한다면 충분히 받아주셨을꺼라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비록 실망스러운 모습이긴 하지만 그간 그가 보여준 모습들을 봤을때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후에 정치가로서 다시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 봤습니다. 성추행 혐의 자체만으로도 실망스러운건 사실이지만 사실 정치가로서 박원순시장만큼 일을 잘한 사람도 없었다고 봅니다. 고노회찬님 사망사건이 생각납니다. 참 안타까웠습니다. 잘못이 있음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인데 왜 죽음으로 모든것을 해결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같은 방식으로 책임을 지려는 박원순시장을 보니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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